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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믿음 바른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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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랜도바른믿음교회March 17, 2023 켄터키 에즈베리대학 부흥에 대해 들어 보셨습니까?
    지금 한창 뜨겁게 미 기독교계 뿐만 아니라 세계 교회들이 주목하고 있는 현상이 하나 있습니다. 몇 주전부터 일어난 미 켄터키 지역의 에즈베리대학에서 시작된 부흥이라는 내용입니다. 2023년 새학기가 시작되면서 시작된 채플에서 찬양과 기도가 끊기지 않고 현재까지 이어지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부흥이 시작되었다고 떠들어 대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미 전역에서 성령의 임재를 느끼고자 켄터키 에즈베리대학의 채플 예배를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미주 한인교회의 한 목사님은 그 현장을 직접 찾아 그 부흥의 열기를 느끼고자 자신의 휴무일을 이용하면서까지 그곳을 방문했다는 유투브 영상까지 만들어 올리신 것을 보았습니다.   다들 미쳤습니다. 현재 켄터키 에즈베리대학에서 일어난 일은 기독교의 부흥이 아니라 지난 3년간 코로나로 인해 억눌려 있던 사람들의 감정폭발에 불과합니다. 많은 이들이 현재 에즈베리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성령의 임재로 인한 새로운 부흥의 물결이라고 말합니다. 다들 헛소리입니다. 정말 이것이 진정한 성령의 부흥이라고 말한다면 말씀선포가 반드시 있어야 하며 그로 인해 회개가 일어나야 함이 마땅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그 부흥 현장에 있는 이들 가운데 말씀을 듣고 은혜받고 회개했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그저 하루 종일 찬양과 기도를 할 뿐이라고 말합니다. 찬양을 하고 싶어서 모여든 사람들에 불과하다는 말입니다. 부흥은 노래 부르고 싶어서 노래방에 찾아 모인 이들이 만들어낸 흥분이 아닙니다.   또한 에즈베리 부흥이 진정한 성령 하나님의 부흥이 되려면 동성애자가 찬양을 인도하므로 은혜받는 이상한 분위기가 형성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 곳에 참여한 사람들의 영안이 열려 그 동성애자가 회개하고 변하는 일이 일어남이 마땅함일 것입니다. 지금 에즈베리 현상은 또 다른 영적 암울함과 어둔 세력들의 한낮 장난질에 불과할 뿐입니다. 절대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부흥은 오직 말씀을 통해서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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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랜도바른믿음교회March 11, 2023 예수 믿어야 천국갑니다.
    오늘날 교회는 트랜드화되어 있습니다. 각 교회마다 자신들의 교회의 특성을 드러내고 자랑하므로 교인들을 모으는 전략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이런 일들을 잘 하는 교회는 좋은 교회이고 또한 이런 교회가 지역사회에 특징을 드러내면 성장을 하곤 합니다. 그렇다보니 교회의 목회자들도 말씀을 선포하는 선지자적 사역이 아니라 교회를 운영하는 CEO가 되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각 교회가 목회자 청빙을 할 때도 목사의 메시지에 주목하기 보다 그 목사가 어떻게 교회를 잘 성장시키고 교회를 잘 유지해 나갈 수 있는 사람인지를 더 살피게 됩니다. 또한 각 교회는 서로 경쟁을 하듯 내 교회와 이웃교회의 차별을 두어 세상 사람들이 자신들의 교회를 선택할 수 있는 잡화점을 만들고자 합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정말 위험천만한 생각입니다. 제가 귀가 따갑도록 외치고 있는 것이지만 교회는 Costco나 Walmart와 같은 내가 갖고 싶은 물건을 구입하기 위해 내가 선택해서 가는 상품점이 아닙니다. 내 모습과 품위에 맞는 명품 가방을 구입하고자 쇼핑하는 쇼핑센터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교회는 우리의 죄로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의 죽음을 면하고 영원한 삶을 얻고자 생명의 말씀을 들으러 가야만 하는 곳입니다. 교회가 나의 필요를 채워주고 한 주간 지친 내 영혼의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 존재하는 곳이라면 우리는 번지수를 잘못 찾아도 한참을 잘못 찾은 것입니다. 교회는 인간들의 죄악상을 깊이 드러내고 그 죄로부터 해결받는 방법과 영원한 진노 아래 처해진 사망과 고통의 죽음을 벗어나는 방법을 얻고자 찾아 나서야 하는 곳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굳이 교회를 찾아 매주일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미신적인 종교생활을 할 바에 차라리 절간을 찾아 공을 드리는 것이 더 낫습니다. 제발 종교생활에서 돌아서십시오. 그리고 예수를 참된 나의 구세주로 모시고 참된 구원에 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비록 이 땅에 살지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주 예수를 바로 알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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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랜도바른믿음교회February 27, 2023 당신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 아십니까?
    성경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인생의 한탄을 기록한 말씀이 있습니다. 아무리 이해를 하려 해도 이해하기 쉽지 않은 성경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저 하나님의 뜻이거니라고 생각하고 억지로(?) 넘깁니다. 실질적으로 내게 그런 일들이 일어난다면 난 성경의 인물보다도 더 심한 갈등과 원망속에서 시간을 보낼지도 모르면서 말입니다. 바로 욥기와 요나서의 이야기입니다.   욥기서의 이야기야 우리 모두가 다 잘 알고 있는 내용이기에 내 삶에 고통스런 일이 일어났을 때, 욥의 불평과 하나님을 향한 그의 마음이 그래도 우리보다 낫다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속에 속시원하게 풀리지 않는 질문은 왜 인생의 고난이 내게 불어닥치느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근본적인 원인과 이유를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지도 않으신 채 당신이 누구신지만 장황하게 설명하시고 감히 나에게 너의 고통을 따지느냐로 말씀하십니다.   욥의 이야기와는 다른 측면이 있지만, 요나도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그렇게 싫다는 일은 억지로 시켜놓고 결국 그 일을 하게 하심도 이해가 되지 않지만 요나의 작은 불평이 오히려 그의 인격에 문제인 것처럼 요나서의 마지막을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보면 과연 우리는 우리의 원치 않는 고난과 우리 삶의 불편을 불평할 수 없는 것이냐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모세의 이야기는 어떻습니까? 젊었을 적 그 혈기넘침으로 자신의 일이 아닌 고통 속에 이스라엘 백성들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하려 할 때는 철저하게 도망자의 삶을 살게 하시다가 모든 꿈과 희망도 다 잃고 포기하고 있을 때 그것도 할 수 있는 능력과 젊음이 다 지난 시기에 하나님은 당신의 일군으로 다시 세우십니까? 모세의 입장으로써는 그가 주님을 만난 첫 만남에서 거절한 이유가 충분하게 보입니다. 그렇다면 왜 주님은 늘 이런 식이실까요? 도저히 그 답은 오직 ‘하나님의 절대주권’이라는 답밖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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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랜도바른믿음교회February 20, 2023 당신은 구원받았습니까?
    며칠 전 유투브영상에서 한 목사님의 설교영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씀을 드리면 제가 추구하는 설교내용을 선포하고 계신 분이었습니다. 오늘날 교회와 목회자들의 심각한 문제가 교회에 나와 있는 교인들을 볼 때, 구원받았음을 전제로 하고 설교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설교가 구원받은 이후의 삶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 99.999%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문제들과 신자들의 도덕성 문제를 보고서 세상 사람들은 믿는 자들이 과연 저렇게 사는 것이 맞나라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교회내의 신자들끼리도 구원받은 자들이 그렇게 행동해도 되는 것이냐고 반문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교회내의 신자들의 문제들에 대해 그 원인을 그 영상의 목사님이 말씀하십니다. 애초에 처음부터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 교회에 출석하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들이라고 말입니다. 구원받은 자들이 아니기에 그런 일들을 교회를 다니면서 저지르고도 양심의 가책도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말에 저는 100%공감하면서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사람들은 교회에 나와 있기만 하면 구원받았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 오늘날 교회와 목회자의 설교라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교회내에서 목사로 장로로 직분자로 세워졌음에도 자신들이 일으키는 반기독교적, 도덕적 문제의 심각성을 모릅니다. 죄를 짓고도 죄를 지었는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교회가 나락으로 떨어졌을까요?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하는 문제는 기독교가 왜 그렇게 변질되었냐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1960년대 복음주의 운동이 일어나면서 교회 내부적으로 문턱을 낮추는 교회, 세상 사람들과 함께 하는 교회 등등, 교세의 확장을 위해 복음을 간단하게 조작하고 성경이 말하는 구원관과 교회관이 아닌 세상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교회와 복음으로 변질시키면서 일어난 일인 것입니다.   제 기억만해도 어렸을 때 교회에 나가서 예수님이 믿어지지 않으면 심각한 영적 통증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참으로 고백할 수 있는 믿음이 생겨나길 간절히 기도한 적이 한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작금의 교회는 이런 영적인 몸부림은 둘째치고 신자들이 구원을 얻는 과정(구원의 서정)을 아예 통째로 버려버렸습니다. 그러니 자신들이 구원받았는지도 받지 못했는지도 모르는 상황속에서 기복적이고 신비적인 신앙으로 믿음생활하면서 그것을 구원받은 것으로, 영생을 얻은 것으로 착각하며 불법을 저지르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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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0
    올랜도바른믿음교회February 13, 2023 당신은 정말 신앙에 관심이 있습니까?
    최근들어 하루에도 몇 십번씩 이런 생각을 합니다. 과연 교회에 출석하는 신자들 가운데 몇 퍼센트나 참된 신앙에 관심을 가지고 있을까? 정말 성경에서 말하는 천국과 지옥을 믿음으로 믿고 영원한 생명을 얻고자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스스로 자신에게 한 번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과연 나는 교회에 다니고 있는 이유가, 지금 이 시간, 예배하는 목적이 무엇인가라고 말입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이유가 선명하지 않다는 것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 것 같습니다. 오늘날 기독교는 세상 이방종교와 다를 바 없이 변질되어 버렸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성경이 말하는 것들과 현재 우리 삶의 현실적 문제는 서로 같이 할 수 없는 경계선이 있는 것 같습다. 마치 성경과 삶이 서로 다른 평행선을 그리듯 각자의 길을 가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보니 성경의 하나님과 나의 삶의 문제의 교차점을 찾고자 기복적이고 현세적인 교회를 낳게 된 것입니다.   근데, 사실 오늘날 교회가 기복적이고 신비주의적인 신앙은 종말론 가운데 후천년설에서 비롯된 것임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습니다. 19세기 말, 20세기초까지만 해도 기독교의 종말론은 무천년설이 중심이었습니다. 개혁주의가 믿고 고백하는 종말론이 바로 무천년설입니다. 하지만 19세기말부터 시작된 세대주의 종말론에 영향으로 여기 저기서성경의 종말론 사상이 다양하게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후천년설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후천년설이란 예수님의 재림과 그분의 통치가 문자적으로 이루어지는 천년왕국이 이 땅에서 기독교의 번영과 황금기를 누린 후 이루어진다고 믿는 사상입니다. 이 사상을 근거로 해서 예수가 영적 통치하는 현 시대는 점점 더 좋아질 것이며 그렇기에 교회와 교인들은 세상 사람들보다 더 번성하고 번영을 누리게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이것으로 인해 교회는 현실에서 잘됨인 번영을 추구하게 된 것입니다. 그 주장의 대표적 인물인 바로 두 조씨 목사님들(고 조용기 목사 및 Joel Osteen)이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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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9
    올랜도바른믿음교회February 05, 2023 개혁주의 종말론에 대해 바로 알기
    언제부턴가 한국 기독교가 이스라엘에 대한 시각이 혼동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최근들어 기독교 신자들이 현 이스라엘인 민족적 이스라엘 백성들과 유대인들을 거룩한 하나님의 장자로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이스라엘 전문 방송채널이라고 하는 유투브 ‘Brad TV’에서는 주님이 오시기 전 역사적 이스라엘이 다시 주님께로 돌아온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스라엘을 위해서 기도와 선교에 앞장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저도 한 때는 이런 내용에 심취해서 민족적 이스라엘을 지지하고 성경에 기록된 모든 예언이 역사적 이스라엘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이스라엘을 봐야 주님 오실 때를 알 수 있다고 설교까지 하곤 했습니다. 지금에서 생각해 보면 정말 위험천만한 일을 한 것이나 다름없음을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현재 기독교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스라엘 회복과 관심은 그 뿌리가 세대주의 신학을 바탕으로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세대주의 신학은 19세기와 20세가 초 개혁주의 교회들이 이단으로 지정한 신학사상입니다.   하지만 이 세대주의 운동이 신비주의 운동과 성령운동의 연합으로 다시 기독교 신자들에게 일어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더욱이 1948년 이스라엘 나라가 역사적으로 다시 회복되면서 세대주의가 주장하던 주장이 더 힘을 얻게 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최근의 기독교는 정통 기독교 진리가 무너지고 이단 사이비 사상이 너무 많이 침투되어 변질되어 버렸습니다.   이러한 일은 기독교가 오랜 시간 가르치고 지켜오던 ‘개혁주의 종말론’에 대한 관심과 교육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세대주의가 주장하는 천년왕국도 사실은 지금이 바로 주님이 영적으로 통치하는 천년왕국임을 모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며, 이미 구약과 신약의 일부에서 예언된 모든 예언의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성취되어 졌음을 알고 세대주의가 주장하는 것처럼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므로 발생되는 심각한 오류를 바로 잡을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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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랜도바른믿음교회January 30, 2023 바른믿음으로 바른신앙을
    하루에도 몇 번씩 아니면 혹은 몇 십번, 몇 백번씩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왜 우리 삶 속에 하나님의 나타나심은 속 시원하게 보이지 않느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힘들 때, 우리에게 생각지도 않은 일들이 생겨났을 때, 우리는 간절히 주님께 지금 이 상황에서 벗어나길, 해결책이 당장 주어지길 기도해 봅니다. 하지만 그런 기도도 잠시 그 문제에 대한 해결도, 그 상황의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곤 이내 이런 생각을 합니다. 어떤 이들은 믿음이 좀 더 필요해서 그런가 보다 그래서 더 큰 믿음을 가져야 하겠다. 다른 이들은 언젠가는 해결되겠지 그저 기다려 보자 등등으로 체념하게 됩니다. 이런 우리의 믿음행위가 결국은 오늘날 성령운동의 엉뚱한 방향을 만들어 내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내 삶에 현실적으로 체험적으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내 삶에 관계하심을 느껴서라도 내가 믿는 믿음이 거짓이 아니고, 내가 믿는 신앙이 틀린 것이 아니길 바라는 간절함 때문에 방언과 예언, 신유와 치료 등 여러 가지 체험적인 은사를 느끼고 싶어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런 이들의 간절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성경은 그 어디에도 우리 삶 속에 직접적인 체험으로 하나님의 존재나 그의 간섭하심이 뚜렷이 나타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신비적인 체험신앙을 가지는 것을 경계하라고 말합니다. 만약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특별한 체험이 우리 기독교의 참된 신앙이라면 욥기는 그야말로 우리에게 도덕적인 도덕경에 불과하게 됩니다. 그저 아픈 사람에게 말 잘해야 한다는 메시지만 던져 주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바른 믿음을 가진다는 것은 쉽지 않게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결코 바른 믿음을 가진다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바른 믿음을 가짐의 시작은 성경의 하나님, 우리 믿음의 조상들이 믿고 고백했던 하나님을 알게 되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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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랜도바른믿음교회January 23, 2023 새해를 맞이하며 희망하는 것
    2023년도가 밝았습니다. 한 해 한 해가 빨리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새해가 되면 생각합니다.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니 뭔가 분명 특별한 한 해가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 소망을 자신의 믿음에 담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지난 시간들을 보내면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래서 새해 들어 생각지도 않은 일이 일어나면 당황하게 됩니다. 혹자는 올해 일진이 안 좋은 것은 아닌가라고 두려움을 가지기도 합니다. 이런 생각들은 다 헛된 생각일 뿐입니다. 우리 주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에 동일하신 분입니다.   우리가 오늘 우리에게 일어나는 좋지 못한 일들로 인해 염려하거나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은 그 일이 우리의 올 한 해를 지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 눈에 좋지 못한 일들도 오늘 일어난 일이니 오늘만 우리에게 씨름을 줄 뿐, 내일 우리에게 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실 신자들은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우리 하나님의 섭리 속에 이루어지는 일이므로 불행이라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가치관과 소용돌이 속에서 살다보니 생각지도 않은 일들을 당하면 그 즉시 그것을 나에게 닥쳐진 불행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큽니다. 요셉이 형들에 의해 노예로 팔려 타국으로 갔을 때 요셉은 세상 절망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인고의 시간이 지나자 우리는 자신 뿐만 아니라 한 민족을 구원하실 하나님의 섭리를 보게 됩니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절망과 같은 순간이 더 크신 하나님의 일들을 이루시는 시작점이라면 우리는 지금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나중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나중을 기억할 수 있으려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고 지배하시는 분과 그 분이 선하신 분이라는 것을 안다면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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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랜도바른믿음교회December 18, 2022 때가 차매
    지난 주 목회칼럼을 통해 우리 주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은 죄의 전가인가 아니면 죄책(죄의 책임)의 전가인가라는 얘기를 했습니다. 오늘 날 많은 교회에서 이 부분이 정확하게 이해되어지거나 교육되어지고 있지 않다보니 심지어 어떤 신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우리를 위해 ‘죄덩어리가 되셨다’라고까지 이해하시는 분이 있었습니다. 참으로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원하신 작정 가운데 성자 하나님이 창조주 하나님이시며 또한 인간의 죄를 속량하시므로 구속주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그 속량의 방법이 바로 참 하나님이 참 인간이 되시는 것이었습니다. 참 인간이 되셨다는 말은 결국 태초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셨던 그 원 상태의 인간모습이었습니다. 범죄 전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온전한 피조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담이 반역하므로 시편 8편에서 말하는 인간의 존귀와 영광스러움을 부패케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영원히 사는 존재로 창조하시므로 영원토록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하나님 백성을 만드셨는데, 인간의 교만과 반역이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즉 왕과 백성의 관계를 깨뜨림으로 사망에 이르게 되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작정과 언약에는 신실한 분이시므로 죽은 인간을 다시 창조하실 것을 작정하신 것이 아니라, 다시 원상태로 회복시키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나 율법이 말하듯 율법은 죄의 대가를 반드시 치루어야만 인간의 죽음 문제가 해결될 수 있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이미 죄로 오염된 인간이 아무리 깨끗하고 선하다고 해서 인간을 대표해서 죽을 수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죄의 값을 치루는 방법은 죄없는 인간밖에 없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구약의 제사법에서 우리는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흠없고 점없는 인간이 되어 우리 죄를 대신 속량하시고자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육신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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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5
    올랜도바른믿음교회December 18, 2022 죄의 전가인가, 죄의 대가지불인가
    얼마전 동영상으로 한 목사님의 집회영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유투브에서 꽤 유명세를 남기고 있는 목사님입니다. 저도 가끔 이 분의 영상을 보면서 공부도 하고 설교 참고자료로 쓰곤 했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 더 이상 이 분의 성경강의나 집회 영상을 보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개혁주의 신학을 다시 정리하고 공부하면서 많은 목사님들의 신학과 교리에 문제가 많다는 것을 발견하였기 때문입니다. 비단 이 분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이 분의 영상을 보면서 많은 분들이 동의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예전에 저도 이 분의 영상을 보면 그렇게 설교했던 적이 있음)이 우리의 죄가 예수님께 전가되어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얘기는 정말 위험천만한 말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교회에서 삼위일체 교리와 성육신 교리를 가르치지 않다보니 제 마음대로 해석하다가 생긴 오류입니다. 삼위일체와 성육신 교리만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다면 이런 잘못된 생각이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는 그렇지가 못합니다. 성경을 나름 잘 풀이한다고 하시는 분들이 기독교 교리를 바탕으로 성경을 해석하지 않고 문화적, 시대적 배경만을 가지고와 해석을 하다보니 자의적인 해석으로 할 때가 많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에 대한 해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죄없고 흠없으신 분이 우리의 죄값, 즉 죽음을 대신 치루신 것입니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죄의 전가교리를 가지고 와서 우리의 죄가 예수님께 전가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죄없으신 완전한 인간인 예수님을 죄인으로 만들어 버리는 불경을 저지르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가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면 죄인이 죄값을 치루신 것밖에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굳이 신이신 그 분이 인간이 되셔서 죽으실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냥 인간 중에 누구 하나 가장 선하게 살던 한 사람이 대신 인류를 대신해서 죽으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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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랜도바른믿음교회December 05, 2022 Incarnation(성육신)
    12월 첫째 주일을 맞이했습니다. Covid-19가 우리 삶의 많은 것들을 바꿔 놓은 것 같습니다. 요즘은 밖에 나가봐도 어느 때와 다르게Christmas의 분위기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불과 몇 전까지만 해도 추수감사절이 지나면 바로 이어 성탄절의 분위기를 거리마다 각 가정마다 느낄 수 있었는데 말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성탄절이 되면 몇 몇 분들이 주인공없는 성탄절이라 탄식하곤 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마저도 듣기 쉽지 않은 세상이 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거리에서는 캐롤송도 잘 들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의 미소 속에서도 성탄의 기쁨을 나눌 수 있는 여유가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개혁주의적인 입장에서 냉철하게 생각한다면 그리 염려할 일도 아니지만, 더 이상 예전같이 성탄절을 맞이하여 아기 예수의 오심을 전하는 일들이 없음에 찜찜할 따름입니다. 그나마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예수의 상징들도 한낮 휴일의 모습으로 변한 것이 코로나 이후 이 세상이 만난 성탄절인 것 같습니다.   참 아이러니한 것은 세상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망각한 채 성탄축제를 즐김도 걱정이었는데, 이제는 성탄의 의미와 함께 그 자체 축제도 없어져 버림에 아쉬움을 갖게 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요?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어쩌다가 이렇게 바뀌어 버렸을까요? 물론 이는 우리 주님의 다시 오실 때가 다 되었음에 일어나는 현상일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성탄의 참된 의미를 다시 회복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그 동안 우리가 망각하며 살았던 하나님 독생자의 성육신과 그 십자가의 의미를 회복하므로 참된 구원의 진리를 바로 잡고 복음의 시작점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그 복음의 시작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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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랜도바른믿음교회November 27, 2022 Cur Deus Homo; 왜 하나님은 인간이 되셨나?
    개혁주의 교회는 그리스도교가 유지하고 있는 교회력과 절기를 맹종하는 것은 아닙니다. 개 교단과 교회의 특성에 따라 필요로 절기를 활용합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오늘날 교회력과 절기를 지키는 것이 꼭 성경적으로 맞는 것이라고 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가령 예를 들어 부활절을 대부분의 교회에서 지키고 있지만, 사실 부활절을 지키는 것은 초대교회의 풍습이 아니었습니다. 초대교회는 매 주일(일요일)을 주님의 부활일로 기념하여 이미 예배의 날로 정했었기 때문에 굳이 부활절을 따로 정해 지키는 것 자체가 이상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오늘날 교회에서 지키는 절기문제도 이제는 정확하게 고민하고 집고 넘어가야할 문제가 되지 않았나 합니다. 그 중에 또 대표적인 교회절기라고 한다면 바로 성탄절기일 것입니다. 미국은 추수감사절 이후 첫 주일부터 대강절 혹은 강림절이라고 해서 성탄절까지 아기 예수의 오심을 기념하는 절기를 가집니다. 이러한 절기가 주는 의미가 없다할 수 없지만, 오늘날 교회 현실은 예전과 같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 주 예수의 오심은 신이 인간이 되었다는 성육신에 의미를 더 강조해야 하는데, 아기 예수에 초점이 맞춰져 기독교의 중요한 교리내용에 위배되어 버렸습니다. 중세 신학자 안셂은 ‘Cur Deus Homo?’라는 책을 써, 왜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는가라는 신학적 고민을 했습니다. 오늘 날 교회가 회복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교리이자 믿음은 바로 ‘성육신 교리’입니다.   기독교는 구원종교입니다. 인간이 왜 구원받아야 하는 존재이며, 이 인간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이 인간이 되실 수밖에 없었던 그 이유를 우리가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한 우리의 구원은 거짓입니다. 인간의 구원은 공짜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신이 인간이 되어 치루신 값비싼 대가였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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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랜도바른믿음교회November 20, 2022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의 인자하심을
    이번 주는 한국 교회절기와 미국 국경일로 지키는 추수감사절이 있는 주간입니다 미국이 처음 추수감사절을 지키게 된 것은 1789년 11월 26일 미국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의 선포로 지키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후 1863년 링컨 대통령이 11월 마지막 목요일을 추수감사절을 국가 기념일로 선포하였고, 1941년 루스벨트 대통령에 의해서 11월 넷째 주 목요일을 추수감사절로 규정하면서 현재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 국경일은 매년 대통령이 국가 기념일로 선포(Declaration of National Holy Day)로 선포해야만 된다고 합니다.   전통적으로 미국민은 추수감사절이 되면 그동안 함께 하지 못했던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여 즐거운 식사 시간과 함께 할 수 주위 가난한 이웃을 초청해서 음식을 함께 먹었다고 합니다. 그렇다 보니 추수감사절이라고 하면 추수감사절 음식인 칠면조를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하지만 최초 추수감사절을 지킬 때만 해도 우리가 알고 있는 데로 인디언들을 초청해서 한해 수확한 곡식으로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이 주된 모습이었다고 알고 있지만, 한 해를 지켜 주시고 지금까지 유지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예배가 더 강조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매년 대통령의 영에 의해 선포되는 추수감사절 규정에도 보면 반드시(?) 가족들이 함께 예배해야 함을 명시하고 있다고 합니다.   어느 덧 기독교적인 절기들이 서서히 세상적인 의식으로 바뀌어 가고 있음에 안타까움을 자아냅니다. 언제부턴가 추수감사절과 성탄절의 중심이 빠져 버리고 인간들이 즐기는 날로 변질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추수감사절의 원 목적은 미국을 건너왔던 이민자들이 어려운 상황과 환경 속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의 섭리가 있으므로 보존될 수 있었음에 감사한 날입니다. 추수감사절은 우리의 먹고 마심에 집중하는 날이 아니라 올 한해 하나님의 도우심에 감사하는 날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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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랜도바른믿음교회November 13, 2022 내가 믿사오며
    지난 주 월요일 중앙플로리다 올랜도지역 교회협의회 목회자 모임이 있었습니다. 물론 아직 우리교회는 정식으로 교회협의회 회원이 되지 못했습니다. 교회협의회 회원이 되기 위해서 가추어야 할 자격조건이 있기에 시간은 좀 걸립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교회협의회 목회자 모임에 참석할 수 있도록 초대해 주셨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목회자 부부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함께 찬양을 하며 기쁨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모인 목사님들의 교단과 교회의 형편은 다 다르지만, 주 안에서 우리는 다름이 없었습니다.   식사와 대화의 시간을 통해 각 교단이 가지고 있는 신학적 정체성과 교회의 방향성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런 대화 가운데 한 목사님으로부터 ‘복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얘기를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었습니다. 작금의 교회는 교회의 정체성과 신학의 정체성이 많이 사라져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오늘날 교회는 그 교회가 가진 정체성(교단의 신학적 중심사상)을 많이 강조하지 않다 보니, 교회의 운영과 교인들의 신학, 교리교육이 많이 무너져 있음도 나눌 수 있었습니다.   지난 번 섬겼던 교회에서도 교회의 중심을 휘어잡고 있는 이들이 교회가 속한 교단의 신학적 정체성을 무시한 채 되지도 않는 자신들의 잘못된 생각으로 교회를 좌지우지하다 보니 웃지 못할 일들이 교회 내에서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번 모임에서 목사님들이 교회 안의 구성원들의 맴버쉽(자격회원)과 어탠던스(일반참석자)에 대한 구별을 두어서 교회의 정체성과 방향성을 지킬 필요가 있음을 나누었습니다. 교회는 같은 신앙고백을 하는 이들의 모임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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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랜도바른믿음교회November 09, 2022 감사의 계절을 맞이했습니다.
    11월을 맞이했습니다. 2022년도 이제 두 달 밖에 안 남았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11월을 감사의 달로 생각합니다. 물론 미국에 사는 한인들이 느끼는 마음이겠지만, 11월에는 추수감사절이 들어 있는 달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시간이 화살같이 지나간다는 그 옛적 모세의 고백에서도 듣는 바와 같이 우리의 시간이 하루하루가 다르게 빠르게 지나고 있음을 인생의 연륜을 통해 느끼게 됩니다. 하루하루 바쁘게 지나는 시간을 보내다 보니, 가끔은 소소하게 지나쳐 버린 감사의 일들이 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지난 시간 여러분들에게 감사하게 느끼게 된 일들이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 생각해 보셨는지요? 감사라고 한다면 많은 이들이 우리에게 득이 되거나 좋은 일들만 기억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섭리 안에선 좋은 일들 뿐만 아니라 좋지 못한 일들도 감사할 수 있는 일이 된다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은 잊어서는 안 됩니다.   저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왜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실 때 다른 이를 용서함같이 나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셨을까입니다. 이 말은 문맥상으로도 우리가 아는 하나님의 성품상으로도 맞지 않는 말입니다. 내 죄를 용서해 주셨기에 나도 다른 이를 용서할 수 있는 감사가 되는 것인데, 주님은 그리 가르쳐 주지 않으셨습니다.   어쩌면 그리스도교의 신앙은 역설인지 모릅니다. 좋은 것에만 감사하는 것만이 감사가 아니라 내게 주어진 좋지 못한 환경과 상황이 곧 선한 하나님의 섭리임을 믿고 감사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감사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너무나 좋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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