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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믿음 바른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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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랜도바른믿음교회February 07, 2022 거룩과 정결, 그리고 부정이란?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셨을 때, 거룩하게 창조하셨을까? 아니면 정결하게 창조하셨을까? 그것도 아니면 부정하게 창조하셨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생각해 보면 우리가 회복해야 하는 것이 무엇이며 우리가 목표로 삼아야 하는 것이 무엇이며 우리가 주의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오늘날 신자들이 거룩과 정결, 그리고 부정의 개념을 모르기 때문에 교회에서 탈(?)이 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과연 거룩과 정결, 그리고 부정이란 무슨 의미일까? 아담과 하와가 최초 창조되었을 때는 거룩하게 창조된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부정하게 창조되지도 않았다. 아담과 하와는 정결한 상태로 창조되었었다. 그리고 그들의 임무는 그 정결함을 그대로 유지하므로 영생을 유지할 수 있었다. 또한 그들에게는 정결을 충분히 유지할 수 있는 능력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의도적으로 그 ‘정결’을 파괴(반역)하므로 스스로 ‘부정’케 된 것이다. 그래서 ‘거룩’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사망(죽음)’에 이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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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랜도바른믿음교회February 07, 2022 ‘기독교강요를 통해 본 칼빈의 기도론(1)’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를 섬김에 있어 일상생활에서 겪게 되는 끊임없는 갈등과 대립 가운데 믿음으로 살고자 할때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섭리 아래 기도와 믿음과 그리고 말씀으로 살게 되어 있다고 칼빈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따라서 신자들에게 있어 기도와 믿음, 하나님의 말씀은 그 리스도인의 생활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기도의 동기가 부여되고 기도의 틀이 형성되며 기도는 또한 첫째가는 믿음의 실천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 기도의 정의   (1) 기도의 본질: 칼빈에 의하면 기도는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택을 매일 받는 믿음의 으뜸가는 실천이라고 말합니다. 칼빈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있는 으뜸가는 특권이 기도이며 기도를 ‘믿음의 영속적 훈련’라고 부릅니다. 즉 우리의 심령 속에 참되고 살아있는 믿음이 있으면 기도가 저절로 즉시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고 강조합니다. 기도를 통해 우리의 믿음은 복음이 우리에게 약속해 준 보화들을 캐낼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도는 살아있는 믿음의 표현이요,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필요를 말로 알리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여기서 칼빈이 말하는 믿음은 우리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자비(부성적 은총과 돌보심)에 대한 확실한 지식을 의미합니다. 이 지식은 그리스도 안에서 거저 주신 약속의 진리에 기초하여 성령을 통해서 우리 마음에 계시되고 확증됩니다. 그러기에 그가 말하는 믿음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닙니다.   첫째,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자비에 대한 확실한 지식이요, 둘째, 그리스도의 약속을 우리 마음에 계시하는 방편이며, 셋째, 그 약속의 성령으로 우리 마음에 인(印)쳐진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자녀들의 기도는 하나님의 부성애(父性愛)와 선하심에 대한 믿음과 지식에 의해서 고취됩니다. 그러므로 참되고 순수한 기도는 단지 목소리만 높이면 되는 것이 아니고 신앙의 내적 원리로부터 우리의 간구들을 하나님께 아뢰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기도는 신앙의 발자취를 따라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용서하심에 대한 회개와 믿음의 반응입니다. 우리가 이미 하나님의 용서를 확신하고 그의 용서의 사랑에 온전히 붙들린바 되었기 때문에 용서를 확신하고 용서를 비는 기도를 믿음으로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의 용서의 긍휼에 근거해야 합니다. (다음 주에 계속)   *위의 글은 인터넷 월간지 ‘월간개혁신앙’에 실린 글을 교우들의 신학정립을 위해 발췌 및 전문 수정 정리한 것임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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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랜도바른믿음교회January 31, 2022 헌신인가 예배인가
    일반적으로 헌금이라고 하면 하나님께 돈을 바치는 일 혹은 바친 돈이고, 헌물이라고 하면 물건을 바치는 일 혹은 바쳐진 물건을 말합니다. 또한 봉헌이라 함은 받들어 드린다는 뜻으로 정성을 다해 드리는 금품을 모두 포함합니다. 이렇게 바친다 함은 신앙적인 예전을 통해 하나님의 소유로 인정하여 더 이상 내 돈이 아니고, 바쳐진 물건 역시 더 이상 내 물건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 바쳐진 것을 성경은 ‘거룩하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구별되었다 함이며, 거룩하게 구별된 것은 더는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신앙적인 맥락에서 헌금과 헌물은 하나님께 드려진 것으로 거룩한 것이며, 동시에 하나님께 드려진 것이기 때문에 바친 돈과 물질에 대한 소유권을 포기하는 행위입니다. 따라서 ‘헌신’이란 내 몸을 하나님께 바치는 일이며, 더는 나 혹은 세상에 속하지 않고 하나님께 속하는 것으로 스스로를 구별하는 것이며, 더 이상 몸을 나의 소유로 주장하지 않고 하나님의 것으로 인정하는 신앙 행위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헌신’은 제물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12장 1절에서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고 말합니다. 또한 이것을 ‘영적 예배’라고 말합니다. 물론 더 정확한 의미는 ‘영적 예배’가 아니라 ‘합리적인 예배’라고 말해야 맞습니다. 여하튼 헌신이란 바로 제사행위와 전혀 무관하지 않음을 봅니다. 따라서 구약의 레위기 제사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의미를 오늘 우리 예배에 적용함도 옳은 것입니다. 제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의미적용입니다. 그렇기에 ‘헌신’은 그 자체가 ‘예배’라 할 수 있습니다.   헌신한다 함은 하나님이 모든 것의 주인이심을 인정하는 일이고 또 내가 하나님의 것이며 나를 내어 드려 더 이상 나 자신을 내 소유로 주장하지 않는 일입니다. 나의 생각과 느낌과 정서를 온전히 하나님과 그분의 은혜에 반응하는 일에 내맡기는 시간이 예배이며 또한 헌신입니다. 나를 드려 하나님이 참 하나님 됨을 증거하는 행위입니다. 따라서 교회에서 성도로서 헌신을 다짐하는 결의를 보이는 기회로 삼는 ‘헌신예배’는 먼저 하나님이 주인이시며, 내가 하나님 앞에서 바쳐진 존재로서 거룩하게 구별되었음을 새롭게 고백하는 일이고, 그래서 자신을 하나님께 내어 드리는 것이 마땅함을 인정하는 일이며, 앞으로 맡은 바 직분에 충실하게 살 것을 하나님 앞에서 다짐하는 시간입니다. 단지 특정한 시간을 내어 단합을 위한 모임을 갖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러므로 헌신예배는 일종의 계약갱신예배(Covenant Renewal Worship)입니다. 오늘 우리는 제직들이 ‘헌신예배’로 모였습니다. 주님 앞에서 겸손하게 교회와 교우들을 섬김의 계약갱신예배이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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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랜도바른믿음교회January 24, 2022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직이란?
    성육신 하신 참 하나님이자 참 인간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신성과 인성을 모두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참된 중보자가 될 수 있다. 하여 성경은 오직 예수만 중보자로 증거한다. 중보기도도 그리스도만이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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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랜도바른믿음교회January 24, 2022 기도, 우린 알고 기도하는가?
    우리의 일상생활 가운데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막상그것에 대한 정확한 의미를 알고 쓰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가령 예를 들어 ‘꿩대신 닭이다’ 라는 말의 유래도 어디에서 오게 된 것인지를 아시는 분이 많지 않습니다. 심지어 이 말이 생뚱맞게 떡국이라는 음식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도 모르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예전에는 떡국을 끓일 때 꿩고기를 넣어서 떡국 국물을 우려내었다고 합니다. 이게 사실인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역사적 사료에 그리 정리하고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 봐도 꿩은 귀한 조류인데, 일반 사람들이 떡국의 국물을 위해 꿩을 사용했다는 것이 그리 납득되는 일은 아닙니다.   여하튼 떡국의 국물을 내기 위한 재료로 꿩을 사용하다가 만약 꿩을 구하지 못하면 닭을 대신해서 쓰면서 ‘꿩대신 닭이다’라는 말이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설날을 맞아 떡국과 얽혀있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지금부터 제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과는 다소 동떨어진 예라 할 수 있겠지만, 신자들이 교회생활을 하면서 잘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의외로 잘 알지 못하면서 신앙생활하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기도’라는 것입니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교회에 발을 들여다 놓기 시작하면서 누구에게 배우지도 않았는데, 기도에 익숙해지기 시작했고,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눈을 감고 우리의 마음의 소원을 일일이 나열하면 그것이 기도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것이 ‘기도가 아닙니다’라고 단정짓기에는 개인의 기도차가 많기 때문에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여러분에게 한 번 묻겠습니다. ‘기도’가 무엇인지 알고 진짜 기도하고 계십니까? 또한 기도하는 방법을 알고 기도하고 계십니까? 또 이런 말씀을 드리면 무슨 기도에 방법이 있고, 기도를 알고 기도해야 하나, 그냥 기도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라고 반문하실 분들이 있을 줄 압니다. 하지만 기독교 신자들이야 말로 정말 기도가 뭔지 알고 기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종교는 기도의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의 기도는 이방종교인들의 기도와는 다릅니다. 세상 종교의 기도는 주술적이거나 기복적인 것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주술적이거나 기복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부터 신자들의 기도가 세상 종교인들의 기도처럼 되어지고 있고 잘못된 기도를 하면서도 내 기도가 맞다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여 몇 주간에 걸쳐 개혁주의 기도에 대해서 이 지면을 빌어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다음 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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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랜도바른믿음교회January 21, 2022 김영현의 해명 및 처세에 대한 담론 - 감리교 김요환 전도사 인터뷰2편
    오늘날 한국교회 안에 일어나고 있는 이단들의 잘못된 구원관을 확인하는 영상입니다. 펜대믹 이후 유투브로 인해 수많은 검증되지 않는 성경교사, 전도사, 일부 군소신학교를 나온 이들의 설교가 교인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이 영상은 지극히 일부입니다. 모쪼록 유투브에 돌아다니는 영상을 함부로 보지 마시고 반드시 섬기시는 교회의 목사님의 안내를 꼭 받으시기 바랍니다. 영상은 한국의 '말씀사랑교회'를 담임하시는 정택주 목사님의 유투브 영상을 바로 옮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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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3
    올랜도바른믿음교회January 21, 2022 [정택주] 김영현의 해명 및 처세에 대한 담론 - 감리교 김요환 전도사 인터뷰1편
    오늘날 한국교회 안에 일어나고 있는 이단들의 잘못된 구원관을 확인하는 영상입니다. 펜대믹 이후 유투브로 인해 수많은 검증되지 않는 성경교사, 전도사, 일부 군소신학교를 나온 이들의 설교가 교인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이 영상은 지극히 일부입니다. 모쪼록 유투브에 돌아다니는 영상을 함부로 보지 마시고 반드시 섬기시는 교회의 목사님의 안내를 꼭 받으시기 바랍니다. 영상은 한국의 '말씀사랑교회'를 담임하시는 정택주 목사님의 유투브 영상을 바로 옮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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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
    올랜도바른믿음교회January 16, 2022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이란?
    성육신이란 참 하나님이 참 인간이 되셨다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의 인격 안에는 신성과 인성을 함께 가지고 계신다는 말이다. 예수 안의 신성과 인성은 서로 혼합되지도 않으면서 서로 분리되지도 않는 완전한 신성과 완전한 인성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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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랜도바른믿음교회January 16, 2022 너무 멀리까지 와 버린 건 아닐까?
    1998년 한국에서 IMF 사태가 터지고 생각지도 않은 한국의 가부장적 제도가 와해되면서 ‘아버지’, ‘남편’, ‘남자’라는 단어들이 새롭게 조명될 쯤, 2001년 3월, 잔뜩 움츠리고 숨죽여 있던 남성들의 야성을 깨우는 한 편의 영화가 상영이 됩니다. 70-80년대를 추억하는 분들이라면 한 번쯤은 보셨을 법한 ‘친구’라는 영화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의 마지막 대사가 요즘 저의 심정을 대변해 주는 말 같았습니다. 이 영화의 처음 장면과 마지막 장면은 초등학생 5명의 등장과 퇴장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부산 바닷가에서 하나의 튜브에 다섯 명의 아이들이 매달려 있다가 조류에 휩쓸리는 일이 생깁니다. 그리고 다시 해변으로 다섯 명의 아이들이 힘을 모아 발버둥을 칩니다. 그 때 한 아이가 말합니다. “우리 너무 멀리 온 건 아니가?”   가끔씩 수요성경공부를 준비하다가도, 혹은 주일 설교, 혹은 아침경건회 말씀을 준비하다가도 되려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과연 이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계란으로 바위치는 것은 아닐까?’ ‘혹시 내가 틀린 것이라면...’ 등등의 마음이 저를 어지럽게 할 때가 있습니다. 다들 문제없이 잘 지내고 있는데, 괜히 내가 불필요하게 떠들어 대는 것은 아닌가라는 질문을 제 스스로에게 수도없이 해 봅니다.   우린 지난 20-30년동안 많은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어쩜 잃어버린지도 모른 채 살아오고 있는지 모릅니다. 혹자는 말합니다. 좀 잃어버리면 어떠냐고 말입니다. 이대로도 문제없다고 말입니다. 1991년 다미선교회 사건과 한국교회 내의 교리와 신학의 분쟁으로 교회에 대한 시선이 곱지 못할 시기, 혜성같이 등장한 복음주의 운동과 복음주의 설교는 신자든 비신자든 모두에게 인기와 사랑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중심은 교회를 세상과 더 가까이 함으로 쉽게 교회 안으로 비신자들의 발걸음을 옮기고자 하는 선한(?) 의도에서였습니다. 하지만 교회의 문턱을 낮춘다는 미명아래 교리와 신학을 터부시한 결과, 지난 30년 동안 한국 기독교를 정체도 모를 신종교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교리와 신학이 교회내에서 사라지면서 이단들이 교회내에 잠식해 들어왔으며 잘못된 신앙과 이단사상이 참된 진리인냥 위장하고 활개를 치고, 교인들도 제각기 각자의 상식과 신념을 신앙으로 여겨 교리와 신학의 지도를 받기보다 각자의 소견대로 믿게 되는 혼돈의 시대에 빠져 버렸습니다. 신앙생활이 아니라 교회생활로 변질되어 버렸고 구원이 아니라 기복이 중심이 되어 버렸습니다. 과연 이 삐뚤어진 기독교를 다시 되돌릴 수 있을까요? 우린 다시 참소망의 언덕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너무 멀리 와 버린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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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랜도바른믿음교회January 10, 2022 성령세례란
    성령세례란 성령이 하나님 백성의 몸과 마음속으로 들어와 영속적으로 내주하시게 됨이 성령의 세례이다. 죄인의 죽은 영혼에게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도록 역사하신 하나님이 성령을 부어주심이 성령세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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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
    올랜도바른믿음교회January 10, 2022 하나님을 아는 지식인가, 큐티인가?
    오래전부터 제 안에 간절한 소원이 있다면 ‘성경이 성경되게, 오직 우리 주님의 영광이 우리 주님께만’ 이라는 제 마음 속에 모토를 삼아 살아왔었습니다. 약관의 나이로 신학교를 들어가는 순간부터 칼빈주의 수업을 들으며 감격했던 그 시간을 잊지 못합니다. 또한 칼빈주의 강연이라는 수업을 들으면서 마음에 새겼던 Sola Scriptura(쏠라 스크립투라, 오직 성경만으로), Sola Fide(쏠라 피데, 오직 믿음으로), Sola Gratia(쏠라 그라티아, 오직 은혜로), Solus Christus(쏠루스 크리스투스, 오직 예수로만), Soli Deo Gloria(쏠리 데오 글로리아, 오직 모든 영광 하나님께)는 지금의 저를 형성한 가장 근본적인 신학과 교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제 평생에 모토를 한 번도, 단 한 순간도 이 5가지의 슬로건을 잊어보고 산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에게서 이런 얘길 들었습니다. 자신이 젊은 시절, 음악을 너무 사랑해서 밤낮으로 자신이 전공하는 악기를 손과 가슴판에 붙이고 자고 일어나고 할 정도였다고 말입니다. 저 역시 이 분 못지않게 칼빈주의의 5가지 슬로건을 가장 소중히 여기며 살았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제 맘속에 간절함이 있다면 오늘날 한국교회가 교회되고 우리의 예배가 예배되길 바라며 이민사회 한인교회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바로 서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하지만 작금의 교회를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현재의 교회들이 교회라고 말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과 염려를 넘어 두려움이 들기까지도 합니다. 강대상에서 선포되는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의 대언이 아니라 인본주의적 심리치료와 최면술로 변질되어 버렸습니다. 이에 대해 교인들은 아무 문제도 느끼지 못합니다. 어제도 한국의 모교회 목사님의 설교를 그냥 지나치다가 잠시 듣게 되었습니다. 듣는 내내 마음이 많이 불편했습니다. 저의 마음을 짓눌렀던 것은 그 목사님의 설교가 아니라 그 설교를 듣고 ‘아멘’으로 반응하는 교인들 때문이었습니다. 과연 저들은 저 목사님의 설교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신학과 교리에 문제는 없는지 한 번쯤은 고민하고 ‘아멘’이라고 반응하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계속 맴돌았습니다. 어쩌다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생각하지 않는 기독교인들’로 변질된 것일까요?   혹여 말씀묵상이라는 큐티가 우릴 이렇게 만든 것은 아닐까요? 미국의 저명한 개혁주의 조직신학자인 마이클 호튼은 큐티(QT)에 대해서 비판하면서 “이 구절이 무슨 뜻인가를 묻지 않고 이 구절이 내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를 묻고 있다는 것은 ‘세속적 인본주의’라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 때 비로소 경건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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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랜도바른믿음교회January 03, 2022 그리스도교의 구원교리란?
    그리스도교를 구원종교로 남게 하는 중요한 3대 교리가 있다. 이 교리를 바탕으로 정통교회와 이단/사이비가 구분되는 것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잊지 말아야 하고 반드시 배우고 숙지하고 있어야 하는 교리는 삼위일체교리, 그리스도론(인성과 신성론), 그리고 이신칭의교리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 가지 교리를 확고히 믿음으로 구원을 확신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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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
    올랜도바른믿음교회January 03, 2022 정동진과 Long Branch Beach에서 동일하신 하나님
    2022년도도 어김없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아마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오늘에 우리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새로운 각오로 새출발을 하고 싶은 인간의 본성은 아닐런지요? 지난 시간을 뒤돌아보면 늘 후회함과 아쉬움이 남기 때문일 것입니다. 물론 아니라고 말씀하실 분들도 있겠지만, 솔직해 지시면 제 말에 동감하실 것이라 생각됩니다.   한국에서는 새해가 되면 강원도 정동진을 향해 많은 사람들이 달려갑니다. 아마 새벽에 떠오르는 해를 가장 크고 확실하게 그것도 제일 먼저 볼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인파를 가운데 적잖은 사람들이 신자들일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신자들의 불편한 진실이 있습니다. 언제부터 한국인들 사이에 새해 해맞이 풍습이 생겼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원래 새해 해맞이 행사는 일제 강점기 잔재입니다. 일제 강점기시 일본의 대한제국 관광 유치를 위해 시작된 것이 지금까지 해돋이 보기 풍습으로 자리맺어졌습니다. 일본의 욱일기에 있는 태양과 일본왕을 숭배하게 하려는 의도가 다분히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그 뿐 아닙니다. 매년 12월 31일 밤 11시 59분에 시작되는 서울 종로 보신각 타종식도 일제 강점기시 원래 일본 사찰의 풍습을 가져온 것입니다. 조선시대에도 없었던 풍습들이 알게 모르게 우리 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신년이 되면 해를 보러 간다던지, 아니면 어떤 특별한 기념이나 의식적인 일들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물론 어떤 분들은 저의 이런 생각을 보고,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느냐라고 말씀하실 수도 있으실 것입니다.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참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우리의 삶 속에 뿌리 깊이 내린 문화를 어떻게 이해하고 적용해야 하는지는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하튼 우리에게 새로운 것에 대한 의미부여와 새로운 시작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나쁜 것은 아닙니다. 새 마음, 새 각오가 우리를 다시 한번 역동적인 시작을 할 수 있는 동기부여를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는 새로운 출발을 오늘 또 시작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정동진에서 뜬 해와 Long Branch Beach에서 뜬 해가 다르지 않듯이 그 해를 만드시고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도 뜨게 하실 하나님은 변함없으신 우리의 창조주이시자 구속주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입니다. 2022년도도 주 예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시작하는 한 해되시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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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
    올랜도바른믿음교회December 26, 2021 신약의 중심 주제, 하나님 나라
    신약의 선포의 중심 주제는 하나님의 나라이고 특히 공관복음은 전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주제에 의해 지배된다. 예수의 선포의 첫 마디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하여, 하나님 나라가 도래하고 있음을 분명히 하였다. 하나님의 나라 혹은 천국, 혹은 나라라는 용어가 마태복음에는 56번, 마가복음에는 21번, 누가복음에는 46번이나 나온다. 예수의 설교의 중심은 하나님의 나라였고, 그가 사용한 독특한 설교법인 비유설교로 그는 주로 하나님의 나라의 성격과 본성에 관하여 가르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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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랜도바른믿음교회December 26, 2021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이맘때면 꼭 생각나는 소설이 있습니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소설입니다. 이 소설이 떠오르는 이유는 이 소설의 첫 배경이 되는 계절이 겨울이라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톨스토이는 이 책에 서 3가지 인간의 근본된 질문을 던집니다. 첫째, 사람 안에는 무엇이 있는가. 둘째, 사람에게는 무엇이 허락되지 않았는가. 마지막 셋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입니다. 우리도 한 번쯤은 위의 3가지 질문 가운데 하나 정도는 스스로에게 물어본 질문일 것입니다.   톨스토이는 위의 3가지 질문에 대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을 통해 답합니다. 먼저는 한 구두수선공을 통해 사람 안에 있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라고 말합니다. 한 교회당 앞에 벌거벗은 채로 쓰러져 있는 한 남자(천사)를 당장 먹을 것도 없는 한 구두수선공이 집으로 데려와 보살피려 할 때, 그의 아내는 불평스러웠으나 하나님을 생각하며 그 청년을 거두게 됩니다. 이것을 통해 인간 속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인간답게 만든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 것입니다.   두 번째, 사람에게 허락되어지지 않은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한 부자의 죽음을 통해 당장 내일 일도 모르면서 오늘을 거만하게 사는 인간들의 무지와 어리석음을 지적하며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고 계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고 그의 주권을 알게 합니다. 그래서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은 내일 인간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지혜가 허락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은, 원래 천사였던 이 소설 속의 주인공 청년이 자신이 천사였을 당시 한 여인의 목숨을 거둘 때 버려지게 된 두 여자 아이들이 누군가의 손에 잘 자라고 있는 것을 보게 되면서 결국 인간은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로 산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 소설을 읽고 나면 왠지 모를 가슴 따뜻함을 느끼게 됩니다. 저만 그런 것인가요? 아마도 이 소설을 읽어 보신 분들은 다들 느끼셨을 것 같습니다. 이제 한 해가 마무리되어 갑니다. 이 번 한 주는 모든 것에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붙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 주일, 마지막 설교, 마지막 교제.... 올 한해도 우리 주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이 저와 여러분을 인도하시며 지키시며 보호하셨습니다. 올 한해 함께 믿음의 손을 잡고 2021년도를 완주한 사랑하는 교우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밝아오는 2022년도도 변함없이 한 가족되어 서로 사랑하며 위로와 격려하며 기쁨과 즐거움의 교회를 만들어 가시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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